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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4.28 [퍼온글]전선의하나님_가나
  2. 2015.01.26 20141224, 파란바람끝자락 앞에서.
  3. 2014.02.03 2월이되었다. 2

[퍼온글]전선의하나님_가나

Studying/etc.. 2015. 4. 2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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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교제하지 않는 사람과 나의 신 이야기를 하는게 가장 재밌다. 어젯밤에 그 재밌는 시간을 보내다 문득 왜 제도권 교회에서 '전지''전능'은 자유롭게 쓰면서 '전선'은 회피하는가 궁금해졌다. 물론 신실하신 하나님, 선하신 우리 주님, 이런 고백은 하지만 교회 안에서 '전선하신 하나님' 이런 표현을 들어본 적 없다.

워딩이 너무 세다. 하나님이 전선하시다기엔 이해할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세월호가 그렇다. 1년 전 이 날 밤, 나는 엉엉 울며 기도했다. 물에 잠긴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주님은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

여전히 믿는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주님은 다 알고 계시며, 남겨진 유족들의 찢어진 마음도 다 아신다고(전지). 지금 당장 말씀 한 마디로 저 바닷속 깊이 잠긴 세월호를 들어올리실 수 있으며, 죽은 아이들도 다시 살리실 수 있다고(전능). 문제는 전선이다. 다 아시면서, 다 하실 수 있으시면서, 왜 가만히 계시나요 주님. 주님 정말 선하시기에 그러고 계시나요?

내가 아는 나의 신은 전선하시다. 내가 만난 나의 신도 그러하고, 내가 믿는 나의 신도 그러하다. 그러면 나는 이 현상과 지식, 현상과 개인적인 경험, 현상과 믿음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해야하나. 지식과 개인적 경험과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 더 쉽게 느껴져 신을 떠난 사람을 여럿 봤다.

다 뜻이 있겠지, 기도합시다. 이런 고백은 당사자의 입에서 나온 자발적인 고백이어야 한다. 교회의, 믿는 제3자의 저런 부추김은 무책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도 아니다. 합리화다. 그 합리화에 복음과 진리가 무의미해진 것이 인간이 써온 역사다.

(사족이긴 하지만) 어느 박사님께서 성완종이 너무 불쌍하다셨다. 정치인 비리야 하루이틀 아니니까 논외로 친다 하더라도, 검찰이 왜하필 성완종을 찍었겠냐는 거다. 성완종은 왜 극단적으로 자살했겠냐고. 몰랐는데, 그는 국민학교 중퇴였단다. 국퇴가 대기업 회장이 되기까지의 인생역고도 말할 것 없지만, 결국 정치인들이 돈 받으면서도 속으로는 '어디서 듣보잡이 와서 돈**한다' 하지 않았겠냐고. 검찰에게도 제일 만만한 사람은 성완종이었다. 자기 사람이라 생각했던 수많은 정치인들이 청와대 지시 사항이라 어쩔 수 없다며 궁색하게 돌아섰을 때 그가 느낀그 배신감. 그게 결국 자살로 몰고갔다는 것이다. 당신은 그게 제일 더럽게 느껴진다고.

이 더러운 나라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 더러운 세상에 사는 인간에게 매일매일 새로운 하루가 주어진다. 그 더러움 속에 뒹굴며 더럽게 살라고 주어진 하루는 아닐테다. 날마다 주어지는 새 날은 인간에게 허락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 더러움을 자각할 기회. 신 앞에 나와 회개할 기회. 신의 뜻을 깨닫고 더러운 세상을 신의 뜻대로 정케 할 기회.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우는 자와 함께 울며, 사탄의 방법과 권세에 맞설 기회.

그 기회를 날마다 새롭게 허락하시는게 내 하나님의 전선이라 믿는다.

잊지 않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기억하면서도, 알면서도 뜻대로 살지 않는 수많은 크리스챤이 신의 선함을 매도해 왔다. 선하신 우리 하나님은 오늘 같은 날 비를 내리며 함께 우시는 당신의 마음를 보이셨다. 지금은 그쳤다. 비가 그친 지금부터라도 뜻대로 살고, 행동하고, 함께하는 것이 신의 전선을 매도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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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남긴다. 한껏고양된채로.


작게시작한일이 점점 커가는걸 느낄때 그 무서움과 기쁨은 형용하기 어렵다. 막중한 책임감이 떠오르기도하고 로또맞은양 기뻐 소리지르기도 한다. 닥터로빈에서 경향신문 댓글을보고 하이파이브하던순간은 잊혀지지않는구나.


몇가지의 단어로 우릴 정의하기엔 참 쉽지 않지만 사랑이라고 해두자. 사람에 대한 불신이 밑바탕에 있다고 우스갯소릴 하곤했지만 결국은 사랑이어라.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기에 여기까지 왔다.


더큰꿈을 말하기엔 술자리가 제격일뿐이지만 우리가 소속해있단자체로도 언젠가는 위안하고 새로이 뻗어나가겠지.


이천십사년 십이월의 어느날이아닌 이십사일 이브에 이런 만남이 있어 더 의미있다. 각기의 비용을 차치하고서 우리의 의미를 삶의 가치를 찾아나가는 모두가 난 자랑스럽고감사하다.


어느날 했던기도에서 나를 통해 빛과소금의 역사를 보이도록. 이기적마음이아닌 희생의 아름다움으로 통로가되길 얼마나 간절히 바랬나. 그 시간이 켜켜이쌓여 상상할수없는 지금이 되었고 또 다른 상상치못할 미래가 있음에 다시 감사한다.


사람을 생각하다 삶을 생각하고 그 기저에 처음과 끝이 사람이요사랑이란걸 느끼며 소름돋게 한잔 더 걸치러간다. 고마웁다. 사랑한다.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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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되었다.

Day by day 2014. 2. 3. 15:59

한달이 지나갔고, 열한개의 달이 남았으며, 이미 2월은 시작되었다.

시간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에 더해 stop과 pause버튼이 없는 현재성은 지금 타이핑을 하고 있는 이때에도 고무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2월.

중고등, 대학의 시절에서 학생이라는 신분과 상황이 주는 2월의 감정은 늘 설렘이다. 3월에 개강하는 한국의 교육사정은 2월은 늘 준비하고 개강(내지는 개학)을 기다리게 한다. 그렇게 귀찮고 가기 싫은 학교도 2월이면 으레 설렘으로 기대하게 한다. 


이십대의 후반이 갖는 중요성은 내가 부여한 것이다. 실제로 한사람의 인생에서 초중후반으로 나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나에겐 초와 중반, 그리고 후반을 나눠야 이전의 방탕함을 일단락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이천십사년. 그 두번째 달을 맞이 하는건 새해의 다짐 못지 않다.


준비했던 인턴이 통과되어 2월 10일 부터는 일을 하게 되었고, 이는 로스쿨의 입시보다 내가 가고자 하는 삶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배울것이 더해지는건 큰 기쁨이다. 언제고 읽을 수 있도록 책을 잔뜩 사다 놓는 느낌이랄까. 또 이전까지 닿아있던 묵은 때를 벗겨냈다. 하고 있던 독서모임과 그 관련 풀린 실밥들을 정리했고, 이젠 영어도 끝장내어야 한다. 리트공부는 그 후에 본격으로 하도록 한다.


등산과 독서를 늘리겠다.

성경읽기를 계속 이어가고, 기도를 더 많이 깊게 하겠다.

판단과 인생의 준거를 다시 세운다.


이렇게 열심히 한다면 2월은 훌륭한 달이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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